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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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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정동 '역사길' 1. 정동 역사길 황해도 신류산에서 사냥을 하던 이성계는 더위에 지쳐 물을 찾는다. 근처 마을 우물에 이르러 급히 물을 마시러 달려간다. 빨래를 하던 강씨는 이성계를 진정시킨다. 손수 물을 떠서 버들잎을 띄운다. 버들잎 불어가면서 천천히 드시라는 배려다. 두 청춘남녀 눈에서 스파크가 일어난다. 강씨는 무식한 변방 장수 이성계를 고려 조정 사교계에 소개한다. 전쟁터를 같이 누빈다. 해주에서 낙마한 이성계를 정몽주가 노릴 때 정도전을 보내 개경으로 불러 낸 것도 강씨다. 산전수전우물전(山戰水戰井戰) 다 함께 겪어서일까? 건국 한지 4년밖에 되지 않은 1396년 세상을 뜬다. 한양도성 서쪽 취현방 북녘 언덕에 장례하고 능호를 정릉(貞陵)이라 한다. 우물 정(井)을 곧을 정(貞)으로 바꾼 묘호다. 결국 우물가에..
골목길여행 동촌 '문화보국길' 1. 동촌 문화보국길 조선시대 한양은 네 개의 산 아래 있는 도성이었다. 네 개의 산을 성곽으로 둘러싼 요새와도 같은 형상이었다. 동서남북 사방에 낙산, 인왕산, 목멱산, 북악산 등 네 개의 산이 있었기 때문에 별칭으로 동산, 서산, 남산, 북산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일본사람들은 신도시 남촌(南村)을 개발했다. 도성 남쪽 동네 명동이다. 뜻있는 조선사람들이 모여서 집을 짓기 시작한 신도시는 도성 동쪽 동네 성북동과 창신동 동촌(東村)이다. 북단장 ‘보화각’(간송미술관), ‘혜곡 최순우 가옥’, 상허 이태준 가옥 ‘수연산방’, 만해 한용운 가옥 ‘심우장’ 등 그 이름만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지는 곳이다. 우리 조상들이 목숨 바쳐 되찾은 우리 땅 대한민국을 찾아 나선다. 동대문디자인플..
골목길여행 부암동 '무릉도원길' 유진룡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전 문화부 장관) 부암동 무릉도원길 역사산책 부천인생학교 골목길 걷기여행 1기 부암동 무릉도원길 역사산책 부천인생학교 골목길 걷기여행 2기 부암동 무릉도원길 역사산책
역사산책 동촌 '문화보국길' 문화보국길 조선시대 한양은 네 개 산으로 둘러친 도성이었다. 포곡식 성곽으로 둘러싼 요새와도 같은 형상이다. 동서남북 사방에 낙산, 인왕산, 목멱산, 북악산 등 네 개의 산이 있었기 때문에 별칭으로 동산, 서산, 남산, 북산이라고 불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둘러보고 '흥인지문'을 지나 언덕 위 ‘한양도성박물관’ 옆 성곽을 따라 올랐다. ‘이화동마을박물관',을 지나 ’낙산공원‘ 그리고 ’혜화문‘으로 빠져나와 성곽길을 따라 성북동으로 들어가 ’수연산방‘과 ’간송미술관‘을 둘러본다. 북정마을을 넘어 아래로 내려가면 북촌이다. 이화벽화마을 동대문역 1번 출구를 빠져나와 낙산공원으로 올라갔다. 동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두 번째 암문에서 ‘이화동마을박물관’과 ‘508숍’(구멍가게)이 나온다. ‘이화마루 텃밭’을..
역사산책 '민주주의로 가는 길'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 서울역 광장 - 강우규 의사 의거 터 강우규(1855~1920) 선생은 1855년 6월 1일 평안남도 덕천군 무릉면 제남리 68번지에서 가난하기 짝이 없는 농가 네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양 북쪽 150리에 있는 깊은 산마을이다. 친형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익혔다. 애국운동에 관여하면서 신변이 위태롭게 되자 1885년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영덕리 68번지로 이주했다. 홍원 중심가 남문거리에서 잡화상을 운영하였다. 물감·담뱃대·면사·포목 등을 팔았고, 다른 상인들에게 저리로 돈을 꿔주기도 했다. 1905년 5월 24일 입헌군주제를 표방한 헌정연구회가 조직되었다가 곧 바로 해산된다. 이를 모체로 1906년 4월 14일 대한자강회를 설립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역사산책 부암동 '무릉도원길' 2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2020년 7월 21일(화) 세검정 석파랑에서 다시 도로를 건너 직진하면 도로가에 멋진 정자, 세검정(洗劍亭)이 나나난다. 광해군은 어머니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시킨다.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을 강화로 유배 보내고 사실상 살해한다. 폐모살제(廢母殺第)한 광해의 패륜을 응징하기 위해 1623년 인조반정을 단행한다. 김류·이귀·심기원·김경징 등 반정공신들은 세검정에 모여서 반정을 모의한 후 칼을 씻으면서 결의를 다진다. 반정군은 모화관에서 심기원의 병사와 합류한 후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을 점령한다. 광해군은 역모의 기미를 알았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김개시라는 상궁 때문이다. 실록은 상궁 김개시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김상궁은 이름이 개시(介屎)로 나..
역사산책 부암동 '무릉도원길' 1 부암동 무릉도원길 한양도성 순성이 도성 안팎 유오로 확대 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은 곳이 있다.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이다. 인왕산 북벽기슭 청계동천과 북악산 북벽기슭 백석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꿈꾼 곳이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어지러운 세상 잠시 잊고 꿈꾸듯 무릉도원을 걷는다. 석파랑에서 출발한다. 석파정 사랑채 별당을 옮겨지은 소전 손재형 선생의 서울 집이다. 소전은 를 되찾아 온 분이다. 대문에 세한도를 걸었다. 세검정은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모의한 곳이다. 큰 물 흘러내리지 않아도 물소리 크게 들리는 특이한 곳이다. 북악산 북벽기슭으로 들어서면 연객 허필 별서가 반긴다. 유당 김노경이 사들여서 조영한 별서 터와 주춧돌 그리고 연못은 지금도..
역사산책 서촌 '광복길' 2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2019년 10월 26일(토) 맑은 바람 불어 영원하라 - 청음 김상헌 집터 청음 김상헌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호종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 간 분으로 대표적인 척화대신이다. 인조가 잠실벌에서 항복례를 치르기로 결정하자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낙향한다. 청음의 형 김상용은 강화에서 행궁 함락 직전에 폭탄을 터뜨려 자결한다.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굴욕을 겪느니 자폭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낙향한 청음은 관작도 받지 않고 청나라 연호도 쓰지 않았다. 결국 청나라에 끌려간다. 한양을 떠나 중국 심양으로 가면서 청음이 지은 시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등지고자 하랴마는 세월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청음 김상헌 집터가 있는 동네는 궁정동이다. 왕후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