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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골목길여행

빛고을 골목길 역사산책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최석호 소장

2022년 1월 12일(수)

 

빛고을

 

빛고을 광주(光州)는 삼한시대에 마한 구사조단국(臼斯鳥旦國), 삼국시대에는 백제 무진주(武珍州), 후기신라시대에는 무주(武州)에 해당한다. 빛고을 광주라는 이름을 처음 쓴 것은 고려 태조 23940년이다.

 

후기신라는 95소경을 설치하고 지방행정을 새롭게 정비한다. 옛 고구려·백제·신라 각 지역에 3주를 두어 전국을 9주로 나눈다. 이에 따라 후기신라 신문왕 5685년 웅천주(공주완산주(전주무진주(광주) 등 옛 백제지역 세 곳에 3주를 설치한다. 무진군(광주)을 무진주(武珍州)로 높이고, 발라주(나주)를 발라군으로 낮춘다. 신라 문무왕 18678년에 발라주로 고쳐서 부르면서 높인지 7년 만에 강등하여 발라군(發羅郡)이라 한 것이다.

 

고려 성종 298312목을 설치하고 지방제도를 완성한다. 후기신라 9주 중 한 곳이었던 무주는 제외되고 대신 나주와 승주에 목을 설치한다.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조선 영조 41728년에는 나주목을 금성현(錦城縣)으로 낮춘다. 이 때 전라도라는 명칭도 전광도(全光道)로 바꾼다. “나주·충주·청주·원주의 네 고을이 모두 반역의 변란으로 그 호()를 강등(降等)”했는데, “아울러 도의 이름을 고친 것이다”(以忠淸道爲公洪道, 全羅道爲全光道, 江原道爲江春道. ···原 四州, 皆以逆變降號, 竝改道名). 결국 나주를 낮추기 위해 광주를 높인 것이다. 빛고을은 항상 나주의 대안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광장

고종 황제 건양원년 1896년 전라남도 도청을 광주에 두면서 드디어 중심도시로 부상한다. 1907년 일제는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다. 정미의병이 일어난다. 전라남도에서만 17579명 의병이 일어난다. 전국 정미의병 중 45.6%를 차지한다. 일제는 1912년 광주읍성을 허문다. 1917년 면제(面制)를 실시하면서 광주를 지정면으로 승격한다. 일본인이 많이 살고, 호당 7원 이상 세금을 낼 수 있는 1500호 이상 가구가 있다. 1931년 광주읍으로 승격한데 이어서 1935년에는 광주부로 승격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뒤 1949년 광주시가 되고, 1986년에는 전국 네 번째로 광주직할시가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97910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쏘았다. 유신독재가 무너졌다. 1212일 전두환 소장과 노태우 소장은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서울에 봄이 찾아왔다. 515일 서울역 광장에 10만 명에 달하는 대학생들이 모여서 반란군부와 정부를 성토했다. 부산과 대구에서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이 일어났다. 광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는 대학생들이 민족·민주화 성회를 개최했다.

 

5 17일 반란군부는 전국대학생총학생회장단 95명을 강제로 연행하고 그날 밤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동시에 계엄군이 대학을 점령하고 민주 인사를 강제로 연행했다. 5 18일 계엄군은 전남대학교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저지하고 항의하는 학생들과 만류하는 시민들을 구타했다. 5 19 11공수여단 병력 1140여 명은 군용트럭을 나눠 타고 광주에 들어와서 폭력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5 20일 공수부대원들은 금남로에서 시민 30명을 속옷만 남긴채 발가벗기고 폭행했다. 계엄군은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해서 시위를 진압했다. 저녁 무렵 시민들은 버스·택시·트럭 등 차량 200여대를 몰고 금남로로 들어와서 계엄군과 맞섰다.  11 3공수여단은 시민을 향해 발포했고 시민들은 총에 맞아 쓰러졌다.

 

5 21일 지난 밤 계엄군 총에 쓰러진 시민 시신 2구를 태극기에 덮어서 금남로로 옮겨왔다. 계엄군은 광주에서 외부로 나가는 전화를 차단했다. 오후 1시 공수부대원들이 무릎쏴 자세로 비무장 시민들에게 집단사격을 가했다. 저격병들은 전일빌딩·상무관·전남도청 등에서 시민들을 조준해서 사격했다. 시민들은 총을 들었다. 시가전이 벌어졌다. 계엄군은 전남도청을 떠나 시외곽으로 후퇴했다.

계엄군을 몰아낸 빛고을 시민들이 전남도청 광장 분수대를 중심으로 모여서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522일 시민들은 518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학생들은 학생수습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523일부터 시민들은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서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열기 시작했다. 526일 계엄군이 전차를 앞세우고 농성동 농촌진흥원 앞까지 들어왔다. 시민대표들은 계엄군의 시내 진입을 막기 위해 죽음의 행진을 감행하고 전차 앞에 드러누웠다. 527일 새벽 410분 공수부대는 전차와 헬기를 앞세우고 1시간 남짓 폭력진압을 벌였다. 시민들은 계엄군이 쏜 총탄에 쓰러졌다.

 

1980521일 살인만행을 저지른 계엄군을 전남도청에서 쫓아내고 시민군이 들어갔다. 201511월 만행과 민주화운동이 교차하는 곳 전남도청과 그 일대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개관했다.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아픈 과거는 예술이 되어 인권과 평화를 예술적으로 승화하고 있다. 아시아문화를 서로 교류하고 연구하고 교육함으로써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중심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나주광주 골목길 역사산책에 참가한 골목길여행 동아리 회원들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투어를 하고 있다.

민주평화교류원에서 어린이문화원과 문화정보원의 라이브러리파크를 거쳐서 문화창조원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투어를 했다. 민주평화교류원은 광주읍성이 위치했던 곳이자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이다. 옛 전남도청 본관과 회의실 그리고 별관, 옛 전남경찰청 본관과 민원실 그리고 상무관 등 총 6개 건물로 이루어진다.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기 위해 관련 건물을 보존하고 있다.

 

어린이문화원은 어린이들이 보고·듣고·만지고·체험하면서 미래세대 주인공으로 꿈을 키워갈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 어린이문화공간이다. 어린이체험관·어린이도서관·어린이창작실험실·유아놀이터·어린이극장 등으로 구성된 공간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가장 많은 빛이 비취도록 밝게 만들었다.

 

어린이문화원은 문화정보원 라이브러리파크로 이어진다. 상설전시관인 주제관, 특별전시와 국제교류전을 위한 기획전시관, 특별열람실과 북라운지 등으로 라이브러리파크를 편성했다.

대한민국 테마여행10선 남도맛기행 2021년 인플루언서 투어 '나주·광주 골목길 역사산책'에 참가한 길따라·골목길여행·여사가간다 등 골목길여행 동아리 회원들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라이브러리파크에서 전시작품 해설을 듣고 있다.

문화창조원은 융복합콘텐츠를 개발하는 창제작 센터와 스튜디오(Arts and Creative Technology Centre & Studio) 그리고 6개 복합전시관 등으로 구성했다. 아시아 최고 문화실험 창작발전소다.

 

518민주화운동 그 길을 따라 옥상정원에 이르렀다. 인플루언서 투어 나주·광주 골목길 역사산책 참가자 모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국립518민주묘지

 

국립518민주묘지는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계엄군에게 희생당한 518민주유공자를 안장한 국립묘지다. 199759일에서야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516일 국립518묘지를 준공하고 51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뒤 첫 기념식을 진행했다. 2002727일 국립묘지로 승격하고 2006518민주묘지로 고쳐 불렀다.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2021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민간인 167명이 사망하고 3643명이 다쳤다. 다친 사람 중에서 112명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1996827일 내란죄 및 내란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각각 사형과 징역 226개월을 선고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특별사면을 건의했다. 1998년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복권시켰다.

 

전일빌딩245

 

전일빌딩은 계엄군 헬기사격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1980518민주화운동 당시 전일빌딩은 전남도청 맞은편에 위치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신문사와 방송사가 입주해 있었다. 항쟁 9일째를 맞은 526일 계엄군이 다시 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진일빌딩에도 시민군을 배치했다. 계엄군이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조비오 신부는 무력진압을 막기 위해 526일 '죽음의 행진'에 참여했다. 그리고 내란방조 혐의로 4달간 옥고를 치렀다. 1989년 국회 광주진상조사특위 청문회에서 “521일 오후 130분에서 2시 사이에 불로교 상공 170미터 지점에서 사직공원을 향해 떠 있는 헬기에서 불이 픽 나갔다고 헬기사격을 증언하기도 했다.

계엄군 광주 시내 진입을 막기 위해 조비오 신부를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이 죽음의 행진에 나섰다.

조비오 신부는 2016년 장기를 기증하고 선종했다. 선종 당시 통장잔고는 ‘0’원이었다. 전두환은 전재산이 23만원밖에 없어서 벌금 956억원과 세금 97천만원도 내지 못한 채 20211123일 피로 물든 삶을 마쳤다.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을 지시함으로써 내란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전두환은 2017년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2011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차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광주도시공사가 전일빌딩을 매입했다. 안전점검을 하던 중 헬기사격 총탄 흔적을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 모두 245개 탄흔을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광주광역시는 2017515일 결과를 발표하고 811일 사적지 28호로 지정·고시했다.

대한민국 테마여행10선 남도맛기행 2021년 인플루언서 투어 나주·광주 골목길 역사산책에 참가한 골목길여행 동아리 회원들이 전일빌딩에서 해설을 듣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전일빌딩 내 245개 헬기사격 탄흔을 상징화한 인트로 영상과 설치미술이 인상적이다.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투명한 유리스카이워크가 나온다. 탄흔 원형을 보존처리 한 것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시 꺾어 들어가니 전일빌딩 헬기사격을 재현한 영상이 나온다. 이어서 계엄군은 왜 전일빌딩을 점령했는지, 헬기사격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은 무엇인지 등을 전시하고, 511연구위원회와 전두환 회고록 등 왜곡의 역사를 연도별로 보여준다. 먹먹한 가슴으로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민주·인권·평화·문화창조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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